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양반전(兩班傳)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31. 09:46

양반전(兩班傳)

 

양반(兩班)이란 사족(士族)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정선(旌善) 고을에 한 양반이 있었는데 어질고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군수가 새로 도임하게 되면 반드시 몸소 그의 집에 가서 인사를 차렸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관청의 환곡을 빌려 먹다 보니, 해마다 쌓여서 그 빚이 천석(千石)에 이르렀다. 관찰사가 고을을 순행하면서 환곡 출납을 조사해 보고 크게 노하여,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미를 축냈단 말인가?”

하고서 그 양반을 잡아 가두라고 명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하여 보상을 할 길이 없음을 내심 안타깝게 여겨 차마 가두지는 못하였으나, 그 역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반이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고 밤낮으로 울기만 하고 있으니, 그의 아내가 몰아세우며,

“당신은 평소에 그렇게도 글을 잘 읽지만 현관(縣官)에게 환곡을 갚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구려. 쯧쯧 양반이라니, 한 푼짜리도 못 되는 그놈의 양반.

이라 했다.
그때 그 마을에 사는 부자가 식구들과 상의하기를,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높고 귀하며, 우리는 아무리 잘 살아도 늘 낮고 천하여 감히 말도 타지 못한다. 또한 양반을 보면 움츠러들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뜰 아래 엎드려 절해야 하며, 코를 땅에 박고 무릎으로 기어가야 하니 우리는 이와 같이 욕을 보는 신세다. 지금 저 양반이 환곡을 갚을 길이 없어 이만저만 군욕(窘辱)을 보고 있지 않으니 진실로 양반의 신분을 보존 못할 형편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 양반을 사서 가져보자.”

하고서 그 집 문에 나아가 그 환곡을 갚아 주겠다고 청하니, 양반이 반색하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부자는 당장에 그 환곡을 관에 바쳤다. 군수가 크게 놀라 웬일인가 하며 그 양반을 위로도 할 겸 어떻게 해서 환곡을 갚게 되었는지 묻기 위해 찾아갔다. 그런데 그 양반이 벙거지를 쓰고 잠방이를 입고 길에 엎드려 소인이라 아뢰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 붙들며,

“그대는 왜 이렇게 자신을 낮추어 욕되게 하시오?”

하니까, 양반이 더욱더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리고 땅에 엎드리며,

“황송하옵니다. 소인놈이 제 몸을 낮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환곡을 갚기 위하여 이미 제 양반을 팔았으니, 이 마을의 부자가 이제는 양반입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 예전의 칭호를 함부로 쓰면서 스스로 높은 척하오리까?”

했다. 군수가 탄복하며,

“군자로다, 부자여! 양반이로다, 부자여! 부자로서 인색하지 않은 것은 의(義)요, 남의 어려운 일을 봐준 것은 인(仁)이요,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한 것을 바라는 것은 지(智)라 할 것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양반이로고. 아무리 그렇지만 사적으로 주고받았을 뿐 아무런 증서도 작성하지 않았으니 이는 소송의 빌미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너는 고을 백성들을 불러모아 그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증서를 작성하여 믿게 하자. 군수인 나도 당연히 자수(自手)로 수결(手決)할 것이다.”

했다. 그리고 군수는 관사로 돌아와, 고을 안의 사족(士族) 및 농부, 장인, 장사치들을 모조리 불러다 뜰 앞에 모두 모이게 하고서, 부자를 향소(鄕所)의 바른편에 앉히고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서게 하고 다음과 같이 증서를 작성했다.

“건륭(乾隆) 10년(1745, 영조 21) 9월 모일 위의 명문(明文)은 양반을 값을 쳐서 팔아 관곡을 갚기 위한 것으로서 그 값은 1000섬이다.
대체 그 양반이란, 이름 붙임 갖가지라. 글 읽은 인 선비 되고, 벼슬아친 대부 되고, 덕 있으면 군자란다. 무관 줄은 서쪽이요, 문관 줄은 동쪽이라. 이것이 바로 양반, 네 맘대로 따를지니.
비루한 일 끊어 버리고, 옛사람을 흠모하고 뜻을 고상하게 가지며, 오경이면 늘 일어나 유황에 불붙여 기름등잔 켜고서, 눈은 코끝을 내리 보며 발꿈치를 괴고 앉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동래박의(東萊博議)》를 줄줄 외어야 한다. 주림 참고 추위 견디고 가난 타령 아예 말며, 이빨을 마주치고 머리 뒤를 손가락으로 퉁기며 침을 입 안에 머금고 가볍게 양치질하듯 한 뒤 삼키며 옷소매로 휘양〔揮項〕을 닦아 먼지 털고 털무늬를 일으키며, 세수할 땐 주먹 쥐고 벼르듯이 하지 말고, 냄새 없게 이 잘 닦고, 긴 소리로 종을 부르며, 느린 걸음으로 신발을 끌 듯이 걸어야 한다. 《고문진보(古文眞寶)》, 《당시품휘(唐詩品彙)》를 깨알같이 베껴 쓰되 한 줄에 백 글자씩 쓴다. 손에 돈을 쥐지 말고 쌀값도 묻지 말고, 날 더워도 발 안 벗고 맨상투로 밥상 받지 말고, 밥보다 먼저 국 먹지 말고, 소리 내어 마시지 말고, 젓가락으로 방아 찧지 말고, 생파를 먹지 말고, 술 마시고 수염 빨지 말고, 담배 필 젠 볼이 움푹 패도록 빨지 말고, 분 나도 아내 치지 말고, 성 나도 그릇 차지 말고, 애들에게 주먹질 말고, 뒈져라고 종을 나무라지 말고, 마소를 꾸짖을 때 판 주인까지 싸잡아 욕하지 말고, 병에 무당 부르지 말고, 제사에 중 불러 재(齋)를 올리지 말고, 화로에 불 쬐지 말고, 말할 때 입에서 침을 튀기지 말고, 소 잡지 말고 도박하지 말라.
이상의 모든 행실 가운데 양반에게 어긋난 것이 있다면 이 문서를 관청에 가져와서 변정(卞正)할 것이다.
성주(城主) 정선 군수(旌善郡守)가 화압(花押 수결(手決))하고 좌수(座首)와 별감(別監)이 증서(證署)함.”

이에 통인(通引)이 여기저기 도장을 찍는데, 그 소리가 엄고(嚴鼓) 치는 것 같았으며, 모양은 북두칠성과 삼성(參星)이 종횡으로 늘어선 것 같았다. 호장(戶長)이 문서를 다 읽고 나자 부자가 어처구니없어 한참 있다가 하는 말이,

“양반이라는 것이 겨우 이것뿐입니까? 제가 듣기로는 양반은 신선 같다는데, 정말 이와 같다면 너무도 심하게 횡령당한 셈이니, 원컨대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고쳐 주옵소서.”

하므로, 마침내 증서를 이렇게 고쳐 만들었다.

“하느님이 백성 내니, 그 백성은 넷이로세. 네 백성 가운데는 선비 가장 귀한지라, 양반으로 불려지면 이익이 막대하다. 농사, 장사 아니하고, 문사(文史) 대강 섭렵하면, 크게 되면 문과(文科) 급제, 작게 되면 진사(進士)로세. 문과 급제 홍패(紅牌)라면 두 자 길이 못 넘는데, 온갖 물건 구비되니, 이게 바로 돈 전대(纏帶)요, 서른에야 진사 되어 첫 벼슬에 발 디뎌도, 이름난 음관(蔭官)되어 웅남행(雄南行)으로 잘 섬겨진다. 일산 바람에 귀가 희고 설렁줄에 배 처지며, 방 안에 떨어진 귀걸이는 어여쁜 기생의 것이요, 뜨락에 흩어져 있는 곡식은 학(鶴)을 위한 것이라. 궁한 선비 시골 살면 나름대로 횡포 부려, 이웃 소로 먼저 갈고, 일꾼 뺏어 김을 매도 누가 나를 거역하리. 네 놈 코에 잿물 붓고, 상투 잡아 도리질하고 귀얄수염 다 뽑아도, 감히 원망 없느니라.”

부자가 그 문서 내용을 듣고 있다가 혀를 내두르며,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참으로 맹랑한 일이요. 장차 나로 하여금 도적놈이 되란 말입니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 가서는, 종신토록 다시 양반의 일을 입에 내지 않았다.

 

兩班者。士族之尊稱也。旌善之郡。有一兩班。賢而好讀書。每郡守新至。必親造其廬而禮之。然家貧。歲食郡糶。積歲至千石。觀察使巡行郡邑。閱糶糴。大怒曰。何物兩班。乃乏軍興。命囚其兩班。郡守意哀其兩班貧。無以爲償。不忍囚之。亦無可柰何。兩班日夜泣。計不知所出。其妻罵曰。生平子好讀書。無益縣官糴。咄兩班。兩班不直一錢。其里之富人。私相議曰。兩班雖貧。常尊榮。我雖富。常卑賤。不敢騎馬。見兩班則跼蹜屛營。匍匐拜庭。曳鼻膝行。我常如此。其僇辱也。今兩班貧不能償糴。方大窘。其勢誠不能保其兩班。我且買而有之。遂踵門而請償其糴。兩班大喜許諾。於是富人立輸其糴於官。郡守大驚異之。自往勞其兩班。且問償糴狀。兩班氈笠。衣短衣。伏塗謁稱小人。不敢仰視。郡守大驚。下扶曰。足下何自貶辱若是。兩班益恐懼頓首俯伏曰。惶悚小人。非敢自辱。已自鬻其兩班。以償糴。里之富人。乃兩班也。小人復安敢冒其舊號而自尊乎。郡守歎曰。君子哉富人也。兩班哉富人也。富而不吝。義也。急人之難。仁也。惡卑而慕尊。智也。此眞兩班。雖然。私自交易而不立券。訟之端也。我與汝。約郡人而證之。立券而信之。郡守當自署之。於是郡守歸府。悉召郡中之士族及農工商賈。悉至于庭。富人坐鄕所之右。兩班立於公兄之下。乃爲立券曰。乾隆十年九月日。右明文段。▼(厂+串)賣兩班爲償官糓。其直千斛。維厥兩班。名謂多端。讀書曰士。從政爲大夫。有德爲君子。武階列西。文秩叙東。是爲兩班。任爾所從。絶棄鄙事。希古尙志。五更常起。點硫燃脂。目視鼻端。會踵支尻。東萊博議。誦如氷瓢。忍饑耐寒。口不說貧。叩齒彈腦。細嗽嚥津。袖刷毳冠。拂塵生波。盥無擦拳。漱口無過。長聲喚婢。緩步曳履。古文眞寶。唐詩品彙。鈔寫如荏。一行百字。手毋執錢。不問米價。暑毋跣襪。飯毋徒髻。食毋先羹。歠毋流聲。下箸毋舂。毋餌生葱。飮醪毋嘬鬚。吸煙毋輔窳。忿毋搏妻。怒毋踢器。毋拳敺兒女。毋詈死奴僕。叱牛馬。毋辱鬻主。病毋招巫。祭不齋僧。爐不煑手。語不齒唾。毋屠牛。毋賭錢。凡此百行。有違兩班。持此文記。卞正于官城主。旌善郡守押。座首別監證署。於是通引搨印錯落。聲中嚴皷。斗縱參橫。戶長讀旣畢。富人悵然久之曰。兩班只此而已耶。吾聞兩班如神仙。審如是。太乾沒。願改爲可利。於是乃更作券曰。維天生民。其民維四。四民之中。最貴者士。稱以兩班。利莫大矣。不耕不商。粗涉文史。大决文科。小成進士。文科紅牌。不過二尺。百物備具。維錢之槖。進士三十。乃筮初仕。猶爲名蔭。善事雄南。耳白傘風。腹皤鈴諾。室珥冶妓。庭糓鳴鶴。窮士居鄕。猶能武斷。先耕隣牛。借耘里氓。孰敢慢我。灰灌汝鼻。暈髻汰鬢。無敢怨咨。富人中其券而吐舌曰。已之已之。孟浪哉。將使我爲盜耶。掉頭而去。終身不復言兩班之事。




 

[주D-001]한 푼짜리도 …… 양반 : 양반(兩班)을 양반(兩半)으로 풀어 한 냥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풍자한 것이다.
[주D-002]벙거지 : 하인들이 쓰던 털모자.
[주D-003]향소(鄕所) : 향청(鄕廳)의 좌수(座首).
[주D-004]공형(公兄) : 호장(戶長)과 이방(吏房) 및 수형리(首刑吏)를 삼공형(三公兄)이라 한다.
[주D-005]명문(明文) : 증명서란 뜻으로, ‘적발’이라고도 한다.
[주D-006]무관 …… 동쪽이라 : 궁궐에서 무관과 문관이 각각 서쪽과 동쪽에 나누어 서는 것을 가리킨다.
[주D-007]눈은 …… 보며 : 호흡법의 일종이다. 주자(朱子)의 조식잠(調息箴)에 보인다. 《연암집》 권4 담원팔영(澹園八詠) 중 소심거(素心居)를 노래한 제 3 수에도 나온다.
[주D-008]《동래박의(東萊博議)》 : 남송(南宋) 때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를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주제를 취해 평론한 것인데, 과거(科擧)에서 논설을 짓는 데 도움 되는 책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널리 읽혔다.
[주D-009]이빨을 …… 삼키며 : 도가(道家)에서 유래한 양생법(養生法)이다. 가볍게 윗니와 아랫니를 36번 부딪치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뒷골을 24번 퉁긴다. 입 안에 고이게 한 침을 가볍게 양치질하듯이 부걱부걱하기를 36번 하면 이를 수진(漱津)이라 하여 맑은 물이 되는데, 이것을 3번에 나누어 꾸르륵 소리를 내며 삼켜서 단전(丹田)에 이르게 한다. 퇴계(退溪) 선생의 유묵(遺墨)으로 전하는 명(明) 나라 현주도인(玄洲道人) 함허자(涵虛子)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자세하다.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7월 6일 조를 보면 연암이 고치탄뇌(叩齒彈腦)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주D-010]냄새 …… 닦고 : 원문은 ‘漱口無過’인데, 입냄새를 구과(口過)라 한다. 당(唐)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송지문(宋之問)이 재주 있는 시인임을 알았으나 그의 입냄새가 심한 것을 싫어하여 기용하지 않았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수록되어 있는 송지문의 걸작 명하편(明河編)은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주D-011]《당시품휘(唐詩品彙)》 : 명(明) 나라 때 고병(高棅)이 편찬한 당시집(唐詩集)이다. 모두 90권으로 시인 620인의 작품 5700여 수를 형식별로 수록하였다. 따로 습유(拾遺) 10권이 있다.
[주D-012]뒈져라고 …… 말고 : 《연암집》 권3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에도 “뒈져라고 악담하다〔惡言詈死〕”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 권1 사전(士典) 1 언어조(言語條)에, 종에게 ‘뒈질 놈〔可殺〕’ ‘왜 안 뒈지냐〔胡不死〕’와 같은 욕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주D-013]엄고(嚴鼓) : 임금이 행차할 때 치던 큰북이다.
[주D-014]너무도 …… 셈이니 : 원문은 ‘太乾沒’인데, ‘乾沒’은 물을 말려 없애듯이 남의 재산을 마구 횡령하거나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부자가 양반을 대신해서 환곡 천 석을 갚아 주었으나 그 대가가 너무도 보잘것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D-015]웅남행(雄南行) : 음관을 남행(南行)이라 한다. 웅남행은 위품(位品)이 높은 음관을 가리킨다.
[주D-016]일산 …… 처지며 : 수령은 행차할 때 일산을 받쳐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므로 햇빛을 쏘이지 않아 귀가 희어지고, 일을 시킬 때 설렁줄을 당겨 사람을 부르면 되므로 편해서 배에 살만 찐다는 뜻이다.
[주D-017]방 안에 …… 것이요 : 기생이 놀다 간 뒤라 귀걸이가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기》 골계열전에서 순우곤(淳于髡)이 제(齊) 나라 위왕(威王)에게 자신의 주량(酒量)을 설명하며 한 말 중에, 주려(州閭)의 모임에 남녀가 뒤섞여 앉아 술을 즐겁게 마시고 나면 “앞에는 귀걸이가 떨어져 있고 뒤에는 비녀가 남겨져 있다.〔前有墮珥 後有遺簪〕”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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