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양 경리(楊經理) 호(鎬) 치제문(致祭文) 사신(詞臣)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31. 10:21

양 경리(楊經理) 호(鎬) 치제문(致祭文) 사신(詞臣)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우리 동방 되살린 건 / 再造我東
누구의 공이던고 / 繄誰之功
천자의 명을 받은 / 天子攸命
창서 양공 이분일레 / 蒼嶼楊公
직책은 경리로서 / 職是經理
문무 재주 겸했고 / 才兼文武
범과 용 모양 부절(符節) 차니 / 虎符龍節
윤길보(尹吉甫)에 견줄 만하네 / 視古吉甫
천과 휘두르며 / 天戈所揮
왜놈 소탕 맹세하니 / 誓蕩島夷
어사중승(御史中丞) 배도(裴度)가 / 如御史度
회서(淮西) 군사 순무하듯 / 往撫淮師

동작나루에서 군대 살피고 / 觀軍銅雀
자각을 호위하네 / 圍碁紫閣
호령소리 들릴세라 / 不聞號令
방략 지시 가만가만 / 潛授方略
으뜸 공은 뉘의 차지 / 孰占頭功
휘하에 서마 있어 / 帳有西麻
삼천 기병 풀어다가 / 發騎三千
소사에서 적 맞으니 / 迎敵素沙
깃대 하나 둑에 꽂고 / 塘置一旗
묵묵히 적의 동정 살피어서 / 黙察偃竪
천리 밖의 승부 결단 / 千里決勝
제 손바닥 금을 보듯 / 如掌其覩
적이 모인 남쪽 땅에 / 妖氛南天
나비 모양 진 만들고 / 蝴蝶爲陣
아침 해가 떠오르며 거울처럼 빛나자 / 輝鏡朝旭
칼 휘두르고 나아갔네 / 舞劍以進
이에 천자의 군사 / 于時天兵
다리 밑서 철갑을 걸치고 / 浴甲橋下
재빠른 삼백 기병(騎兵) / 弄猿三百
한꺼번에 말 채찍질 / 一時鞭馬
- 원문 빠짐 - / □□□□
말굽 아래 무찔렀으니 / 悉殲蹄間
이 한 접전 아니면 / 微此一鏖
교관(郊關) 지키기 어려웠지 / 難保郊關
번개처럼 군사 달려 / 全師電馳
저 울산(蔚山) 성채 쳐부수니 / 搗彼蔚砦
왜놈 수괴 궁지 몰려 / 凶渠窮蹙
사로잡긴 시일 문제 / 指日可械
반구정(伴鷗亭) 태화강(太和江)에서 / 鷗亭和江
적의 발톱 뽑아 버렸지만 / 落其牙距
몰린 왜놈 전세를 관망하며 / 困獸隙鬪
도산성(島山城)에서 버티네 / 島山是拒
절지를 앙공하며 / 絶地仰攻
막 불을 놓아 잡으려니 / 方圖熏穴
마침 하늘 찬비 내려 / 會天凍雨
손가락 떨어지고 살갗 찢어졌네 / 指墮膚裂
남은 도적 못 벤 것은 / 殘寇逋誅
때가 아직 불리한 탓 / 緣時未利
포위 풀고 잠시 철수 / 暫撤重圍
뒷 계획을 의논하자 / 後擧是議
간교한 참설 꾸며 / 讒說如簧
성대한 공적 헐뜯으며 / 忮毁茂績
공이 패전 숨기고 / 誣公掩敗
적을 풀어 줬다 무고하니 / 咎公縱敵
온 나라가 놀라 부르짖으며 / 擧國驚號
천조(天朝)에 달려가 송사했는데 / 走訟天朝
사신 내왕 빈번했어도 / 冠蓋旁午
비방 여론 막지 못하였네 / 莫遏群囂
마침내 공이 해임되어 / 遂解重務
행차 돌려 돌아가니 / 旌棨言旋
도성 안의 백성들이 / 都人士女
앞서 뒤서 달려오네 / 奔走後先
수레 잡고 통곡하나 / 攀轅痛哭
뉘 이 걸음 만류하리 / 莫挽其行
왜 조금 더 머물러서 / 胡不少留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지 않나 / 究我生成
결국 왜놈 잡은 것은 / 終焉獲醜
실로 공의 위엄 덕분 / 寔公餘威
백성들이 안정되고 / 生靈奠妥
온 나라가 깨끗해졌네 / 區宇淸夷
무릇 우리 조선 사람 / 凡我東人
은혜 입고 못 갚았으니 / 含恩未報
눈앞에 뵈옵는 듯한 정성으로 / 如見之誠
빛나는 사당 세웠도다 / 有奐廟貌
아, 군탄의 해를 맞아 / 嗚呼涒灘
중국이 상전벽해(桑田碧海) 되었으나 / 桑海中州
오직 우리나라만은 / 惟我家法
춘추 대의(春秋大義) 지켰노라 / 一部春秋
명 나라 망한 것을 슬퍼하며 / 浸苞之悲
구원병 보내 준 일 생각하니 / 采芑之思
백 년이 지나도록 / 逮玆百年
의리 더욱 깊어지네 / 罙篤是義
운거에다 풍마 타고 / 雲車風馬
칠월이라 동쪽 순행 나서시니 / 七月東巡
충만하여 곁에 계신 듯한 / 洋洋左右
공은 황제의 신하 / 公惟帝臣
성 남쪽을 돌아보니 / 顧瞻城南
이내 생각 깊어지고 / 我思邃長
깨끗하고 엄숙한 사당 / 庭宇汛肅
단청 다시 으리으리 / 丹雘復光
흡사 영용(英勇)한 모습으로 / 彷彿英姿
갑옷 입고 머무시는 듯하니 / 來憩鎧仗
신령의 위엄 미친 곳마다 / 威靈所曁
바다 육지 길이 안정되리 / 永鎭海壤
술과 고기 진설하고 / 牲醪踐列
징과 북을 울리오니 / 鐃鼓振作
밝으신 신명이여 / 神明不昧
이 잔 고이 받으소서 / 庶歆玆酌

[주B-001]고반당(考槃堂) : 당명(堂名)을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에서 따왔다. 고반은 은거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 쟁반을 악기처럼 두들기며 즐긴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연암은 황해도 금천(金川) 연암협(燕巖峽)에 은거할 때 서양금(西洋琴)을 쟁반 삼아 그 위에 밥사발을 놓고 꽁보리밥을 먹으면서 젓가락으로 서양금을 두들기노라고 하면서, 그런 뜻으로 정자의 이름을 ‘고반’이라 지었다고 하였다. 《弄丸堂集 卷4 與朴美仲趾源》
[주C-001]양 경리(楊經理) 치제문(致祭文) :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도찰원우첨도어사 겸 경리조선군무(都察院右僉都御史兼經理朝鮮軍務)로서 조선에 파견되었던 명 나라 장수 양호(楊鎬)에 대한 제문이다. 양호는 제독(提督) 마귀(麻貴)와 함께 왜군을 격퇴했으나 울산 전투에서 고전 끝에 일시 경주로 철수한 뒤 참소를 당해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조선 정부는 여러 차례 사신을 파견하여 양호의 공적을 밝히고 그의 유임을 건의하면서 그에 대한 참소에 대해 해명하는 상소를 명 나라에 보냈으며, 그의 귀환을 애석해하여 거사비(去思碑)를 세우고 선무사(宣武祠)에 배향(配享)하였다. 박종채(朴宗采)의 《과정록(過庭錄)》 권3에 의하면 이 글은 정조 20년(1796) 안의 현감의 임기가 만료되어 서울로 돌아와 산직(散職)에 있던 연암이 당시 좌승지였던 이서구(李書九)의 부탁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즉 이서구가 편지를 보내, 어명으로 명 나라 장수 양호와 형개(刑玠)의 제문을 짓게 되었으나 공무에 바빠 겨를이 없으니 각각 50운(韻)으로 초고를 대신 만들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으므로 지어 준 것이라 한다.
[주D-001]창서(蒼嶼) : 양호의 호(號)이다.
[주D-002]윤길보(尹吉甫) : 서주(西周) 선왕(宣王) 때의 인물로 성은 혜씨(兮氏)요 이름은 갑(甲), 자는 백길보(伯吉甫)이며, 윤(尹)은 관직 이름이다. 선왕 때에 험윤(玁狁)이 침입하여 호경(鎬京)을 공격하자 윤길보가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험윤을 태원(太原)까지 쫓아내고 돌아왔다. 여기에서 양호(楊鎬)를 굳이 윤길보에 견준 것은 양호의 ‘호(鎬)’ 자가 서주의 도읍인 호경의 ‘호’ 자와 같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詩經 小雅 六月》
[주D-003]천과(天戈) : 천자의 창 즉 제왕의 군대를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조주자사사상표(潮州刺史謝上表)에 “천자의 창을 휘두르니 모두 순종하네.〔天戈所麾 莫不寧順〕”라고 하였다.
[주D-004]어사중승(御史中丞) …… 순무하듯 : 당 나라 헌종(憲宗) 원화(元和) 12년(817)에 어사중승 배도가 회서선유초토처치사(淮西宣諭招討處置使)가 되어 채주(蔡州)의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은 일을 두고 말한 것이다. 《新唐書 卷173 裵度傳》
[주D-005]동작나루에서 군대 살피고 : 선조 30년(1597) 9월 12일에 양호가 선조와 함께 한강의 동작나루에 와서 남쪽 지방의 전황을 살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宣祖實錄》
[주D-006]자각(紫閣) : 도성(都城)을 가리킨다.
[주D-007]서마(西麻) : 양호 휘하의 제독 마귀(麻貴)를 가리킨다. 당시에 명 나라에서는 이여송(李如松)으로 대표되는 철령(鐵嶺)의 이씨와 마귀로 대표되는 사령(沙嶺)의 마씨 집안에 장수들이 가장 많이 배출되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동리서마(東李西麻)’라 하였다. 또한 이여송의 아우 이여매(李如梅)도 총병(摠兵)으로 양호의 휘하에 함께 와 있었다. 《明史 卷238 麻貴傳》
[주D-008]소사(素沙) : 직산(稷山)의 소사평(素沙坪)으로 정유재란 때 명 나라 장수 해생(解生), 양등산(楊等山) 등이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의 일본군을 격파한 곳이다.
[주D-009]적의 동정 : 언수(偃竪)는 깃발을 내리거나 세우는 것을 말한다.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깃발을 내리는 것을 언기(偃旗)라 한다.
[주D-010]철갑을 걸치고 : 철갑을 걸치는 것을 ‘욕철(浴鐵)’이라 한다.
[주D-011]재빠른 삼백 기병(騎兵) : 동진(東晉)의 화가 대규(戴逵)의 그림에 농원도(弄猿圖)가 있고, 마상희(馬上戱)의 하나로 원기(猿騎)가 있다. 원숭이는 동작이 민첩하여 ‘원첩(猿捷)’이란 성어가 있다.
[주D-012]원문 빠짐 : 국립중앙도서관 및 영남대 소장 필사본에는 ‘狡彼倭奴’, 숭실대 박물관 소장 필사본에는 ‘猾彼倭奴’로 되어 있다. 둘 다 ‘교활한 저 왜놈들’이란 뜻이다.
[주D-013]교관(郊關) : 도성(都城)을 에워싼 교외 지역을 방어하는 관문(關門)을 말한다.
[주D-014]왜놈 수괴 : 왜장 가또오 기요마사〔加藤淸正〕를 가리킨다.
[주D-015]전세를 관망하며 : 소식(蘇軾)의 초연대기(超然臺記)에 “마치 틈 사이로 싸움을 구경하는 것 같으니, 승부가 어느 쪽에 있을지 또 어찌 알 수 있으랴.〔如隙中之觀鬪 又焉知勝負之所在〕”라고 하였다.
[주D-016]도산성(島山城) : 왜장 가또오 기요마사가 울산의 해변가 험준한 곳에 쌓은 성이다. 1597년 12월에 양호가 울산으로 진군하여 반구정과 태화강의 왜적 소굴을 공격하자 왜군은 미리 만들어 놓은 도산성으로 도망을 가 항거하였다. 《燃藜室記述 卷17 宣祖朝故事本末》
[주D-017]절지(絶地)를 앙공(仰攻)하며 : 험악하여 출로가 없는 지역을 절지라 하며, 저지대에서 높은 곳을 공격하는 것을 앙공이라 한다.
[주D-018]간교한 참설 꾸며 : 당시 병부직방사 찬획주사(兵部職方司贊劃主事)로 조선에 온 정응태(丁應泰)가 명 나라 조정에다 양호를 무고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교언(巧言)에 “간교한 말 생황의 혀 같네.〔巧言如簧〕”라고 하였다.
[주D-019]눈앞에 …… 정성으로 : 제사 지낼 때 재계(齋戒)하는 동안 고인을 간절히 그리워하면, 그러한 정성에 감응하여 고인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한다. 《禮記 祭義》
[주D-020]사당 : 선무사(宣武祠)를 가리킨다. 선무사는 선조 31년(1598)에 형개(邢玠)의 공로를 표창하기 위하여 세운 생사당(生祠堂)인데, 선조 37년(1604)에 왕명으로 양호를 배향하였다.
[주D-021]군탄(涒灘)의 해 : 군탄은 고갑자(古甲子)에서 신(申)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명 나라가 멸망한 1644년인 갑신년(甲申年)을 가리킨다.
[주D-022]명 나라 …… 슬퍼하며 : 《시경》 조풍(曹風) 하천(下泉)에 “차갑게 흘러내리는 저 샘물, 가라지 덤불을 적시네. 아아 내 깨어나 탄식하며, 저 주 나라 서울을 생각하노라.〔洌彼下泉 浸彼苞稂 愾我寤嘆 念彼周京〕” 하였다. 서주(西周)의 서울은 호경(鎬京)이므로, 양호(楊鎬)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도 함축할 수 있다.
[주D-023]구원병 …… 생각하니 : 《시경》 소아(小雅) 채기(采芑)의 내용을 가리킨다. 주 나라 선왕(宣王) 때 만형(蠻荊)이 반란을 일으키자 방숙(方叔)에게 정벌을 명하였는데, 그때 군사들이 쓴 나물을 뜯어 먹으며 행군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정유재란 때 명 나라 천자가 양호가 이끄는 구원병을 파견한 사실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주D-024]운거(雲車)에다 풍마(風馬) 타고 :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 만든 교사가(郊祀歌)에 “천지 신령의 수레는 검은 구름을 얽고 …… 천지 신령이 내려오실 때 바람같이 빠른 말을 타시네.〔靈之車 結玄雲 …… 靈之下 若風馬〕”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명(明) 나라 신종(神宗)에게 제사를 올리니 황제의 신령이 강림한다는 뜻이다.
[주D-025]칠월이라 …… 나서시니 : 음력 7월 21일이 명(明) 나라 신종(神宗)의 기일(忌日)이었으므로, 임금이 대보단(大報壇)을 향해 망배례(望拜禮)를 행하였다. 『영조실록』 36년 7월 21일 영조 22년(1746)부터 대보단 제사에 명 나라 신종의 신하인 양호(楊鎬)와 형개(邢玠)를 배향(配享)하기로 하였다.
[주D-026]충만하여 …… 듯한 : 《중용장구》 제 16 장에서 공자는 조촐하게 재계하고 엄숙한 옷차림으로 제사를 받들면 귀신이 “충만하여 위에 계신 듯하고 좌우에 계신 듯하다.〔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