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소설 > 광 화 문......서기원[559]
입력 : 1995/10/31 16:43 조선일보
%%%%%% 하늘거리는 등불 (37) %%%%%%.
동짓달 초순. 김옥균은 오경석의 부고를 받았다. 오경석은 병자
년 수호조약을 체결할때, 고문격인 비공식 수행원으로 대표 신
헌을 도왔다.
당시 대원군은 조약은 물론 협상자체를 반대하여 신헌에겐 서신을
보내고 오경석에겐 사람을 시켜 협상을 깨도록 압력을 넣었다. 대원군
만이 아니었다. 왜놈들을 나라 안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여론이 비등하
여 협상대표들에게 무거운 부담이 됐던 것이다.
조약이 맺어진 후 초췌한 모습으로 운현궁을 찾은 오경석은 침통
하게 아뢰었던 것이다.
『대원위 합하의 뜻을 거역하여 송구하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지금
의 조정과 나라의 힘으로는 일본과 싸워 승산이 없겠기에,그같은 결단
을 내린 것이오이다. 다만 국익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나름으로 애를
썼소이다. 용서하십시오.』.
지금의 조정 형편이란 말 속에, 민씨정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져 있었다. 오경석과 김옥균은 『대원군 집권하에서 문호개방을 하
는 것이 상책이다. 병인년과 신미년에 불란서군 미국군을 물리쳤던,그
힘과 기세를 바탕으로 상대와 대등한 처지에서 협상을 하고 국교를 터
야 한다.』 이같은 의견을 여러차례 나눈 적이 있었다. 요샛말로는 자
주적 외교이다.
일방적인 개항과 개항장 구역의 지정같은 요구에 쩔쩔 매고 있는
것도 초장부터 저들이 이쪽을 깔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싶은 안타까움
과 뉘우침이 내내 오경석을 괴롭혔을 터이다.
오경석은 대원군을 만난지 며칠 안돼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병세가
다소 호전되어 더러 바깥 나들이도 하더니 마침내 세상을 하직한 것이
다.
수표교 오씨댁엔 문상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사역원 당산역관
으로 품계가 종1품 숭록대부에 이르렀다.
문상객중엔 중인들뿐 아니라 어엿한 사대부들도 적지 않았고, 대
갓집 청지기들도 섞여 있었다.
김옥균은 상주 세창의 인도를 받고 빈소에 들어 조문했다. 남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향년 49세, 식견과 안목이 시류를 앞섰
으나 중인이란 신분탓으로 뜻을 펴지 못했고, 김옥균등 젊은 사대부들
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런 고민도 명을 재
촉한 한가지 원인이었을 것이다.
조문이 끝나자 세창은 김옥균을 안사랑으로 뫼셨다. 바깥채는 사
람들로 붐비기 때문인듯 했으나,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창은 다락에서 큼직한 오동나무 상자를 내려 뚜껑을 열었다. 지
구의였다. 대륙은 갈색, 해양은 청색으로 칠했다.
『선친께서 교리나으리께 드리라는 유언이었소이다.』.
김옥균이 청국서 만든 지구의라는 것을 처음 구경한건 여러해 전
박규수댁에서였다.박규수는 지구의를 천천히 돌리며 좌중을 놀리듯 웃
어댔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네만, 그게 아닐세. 자 이리 돌
리면 중국이요, 저리 돌리면 구라파요 다시 돌리면 미국이 아닌가. 한
복판에 조선을 멎게하면 조선이 중심이지.』.
김옥균은 그런 장면을 떠올리며, 고인의 유지를 가슴깊이 간직했
다.
『잘 받겠네. 춘부장어른의 뜻은 우리네가 계승하여 이 나라의 향방
을 바로 잡을 것일세.』.
김옥균은 스스로 다짐하듯 나직이 말했다. 손님 발길이 끊어진 뒤
에도, 김옥균은 유홍기와 함께 사랑채 별실에서 밤을 지샜다. 그중 상
심하고 애석해하는 사람이 유홍기였을 것이다.
『지체좋은 양반가에 태어났더라면, 환재(박규수의 호)대감과 함께
나라의 명운을 바꿔 놓았을거요』
『대치(유홍기의 호)선생의 어깨가 더 무거워진 것 같소이다. 이제
두몫을 하셔야 할테니까요.』
『과분한 말씀. 고인이 가보처럼 아끼던 지구의를 김교리께 남겼으
니 내가 무슨 말을 더 보태겠소. 김교리만 믿고 있소이다.』.
두사람은 새벽녘까지 대작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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