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박규수는 조부 연암의 실학영향 받아
입력 : 1996/10/22 17:26
### 성대 김명호교수, 저작집 「상고도회문의례」 16권 처음공개 ###.
조선시대 개화사상가로 조정에 큰 영향을 끼친 환재 박규수(1807∼
1977)의 젊은 시절 저작집인 「상고도회문의례」 전문이 최근 발견되었다.
「상고도회문의례」는 모두 16권 16책으로 박규수가 1826년 여름부
터 1827년 사이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저작집. 책제목은 『위로 거
슬러 올라가 옛사람을 벗삼으며(상우고인) 글로써 벗을 사귄다(이문회
우)』는 뜻.
박규수가 평소 마음속에 섬기며 벗삼고 싶어한 역대 중국의 뛰어
난 인물들에 대한글을 발췌하고 이에 관하여 자신의 친구들과함께 글을
지을 목적으로 편찬한 것.
지금까지는 이 책의 극히 일부만이 전해졌으나 최근 성균관대 김
명호교수(한문학)가 후손들이 보관해온 박규수 친필로 된 이 전집을 찾
아냈다.
「상고도회문의례」에는 제갈량, 도연명, 사마광, 악비, 명태조 등
중국 한 이후 명말까지 왕조의 말기나 교체기 같은 위기의 시대에 공훈
을 세우거나 충절을 지킨 인물들에 관한 글들이 주로 담겨 있다.
이러한 인물 선정은 조선왕조가 쇠잔해 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
면서도 충성을 다짐하는 젊은시절 박규수의 강직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
박규수에 대해 그동안 학계에서는 실학과 개화사상을 이어주는 역
할을 했다는 설과 오히려 실학을 퇴보시켰다는 설 등이 대립했었다.
그러나 「상고도회문의례」 전집을 통해 그가 등 실학파의 사
상적인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김명호 교수는 주장했다.
▲사론을 통해 선비란 특정한 신분이 아니라 「생인의 대본」이라고
주장한 점 ▲병론에서 법고와 아울러 창의적인 운용을 강조한 점 ▲ 홍
대용(1731∼1783)이 말한 지원지동설을 계승, 주장한점 등은 『박규수가
할아버지인 등 실학파의 영향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물
증』이라고 김교수는 설명했다.
또 박규수는 당시 굶주리는 백성의참상과 동북지방 화전민들의 궁
핍상을 고발하고 있는데 김교수는 『박규수가 젊은시절부터 민중의 고통
에 지대한 관심을 지녔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은 이달초 「상고도회문의례」전집과
「금유시초」 등 한시모음과 의관제도의 개혁을 촉구한 「거가잡복고」 (일
본오사카부립도서관 소장) 등 박규수의 저작을 모두 담은 「환재총서」를
발간했다.
박규수는 실학사상가인 연암 (1737-1805)의 손자로 1875년
관직을 물러날 때까지 도승지, 한성부판윤, 평안도관찰사, 우의정 등을
지냈다. 그는 1876년 조약 채결을 막후에서 지원하는 등 관직을
물러난 뒤에도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옥균 박영효 유길
준 김윤식등 개화파 인물들은 대부분 그에게 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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