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종숙부 예조 참판 증 영의정공(領議政公) 묘갈명(墓碣銘) |
|
공의 휘는 사정(師正)이요 / 公諱師正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 潘南人也
자는 시숙(時叔)이요 / 字曰時叔
부친의 휘는 필하(弼夏)이네 / 考諱弼夏
우리 박씨는 / 維我朴氏
신라에서 비롯되어 / 肇自新羅
여덟 망족(望族)으로 갈렸는데 / 分爲八望
반남이 제일 대가 / 潘爲大家
평도공(平度公)은 / 維平度公
우리 태종 도우셨고 / 相我太宗
야천(冶川)께서 상서로운 조짐 일으켜 / 冶川發祥
대대로 번창하게 되었네 / 族世遂昌
금계군(錦溪君)의 공적이며 / 錦溪功業
금양군(錦陽君)의 문장이라 / 錦陽文章
증조 휘는 세교(世橋)이고 / 曾祖世橋
조부 휘는 태두(泰斗)이니 / 祖諱泰斗
추증(追贈)되는 경사 거듭되고 / 榮贈襲休
봉군(封君)이 대를 이었네 / 君封世受
모친 윤씨 부인은 / 妣尹夫人
관찰사 반(攀)의 따님 / 監司攀女
공께서는 숙종대왕 / 公於肅廟
계해년에 출생하여 / 癸亥以擧
기미년에 돌아가시니 / 己未乃卒
향년은 오십칠 세 / 壽五十七
정유년에 정시 급제 / 丁酉庭試
한림이며 옥당이며 / 翰林玉堂
춘방이며 대각이며 / 春坊臺閣
검상이며 전랑을 / 檢詳銓郞
두루두루 거치셨지 / 周歷流轉
산직(散職) 겸직(兼職)도 있고 / 有冗有兼
해읍에도 간혹 보직되고 / 間補海邑
호남도 안렴(按廉)했네 / 亦按湖廉
처음에 흉당들이 / 厥初凶黨
사필 장악할 욕심으로 / 圖秉史筆
외직으로 공 내쫓고 / 絀公于外
효경(梟獍) 같은 자들을 배치했네 / 獍梟峙列
공이 그 간상(姦狀) 파헤쳐서 / 公發其姦
드디어 신치운ㆍ조지빈을 공박하니 / 遂駁雲彬
누가 저들을 함께 천거했나 / 誰其同剡
그 사람을 알 수 있네 / 可知其人
엄숙한 저 청묘는 / 肅肅淸廟
묘정(廟庭) 배향 장엄한데 / 庭食嚴哉
저 세 정승들은 / 若彼三相
진실로 재앙의 괴수들이라 / 寔俱禍魁
저들 배향 물리쳐서 / 並斥其享
제사 의식 중히 하고 / 以重祀典
몸가짐 고고히 하여 / 持我矯矯
저들의 관리 선발 조소하였네 / 譏彼銓選
네 충신을 함께 제사하자고 / 並祠四忠
공이 처음 의견 내셨네 / 詢謀自公
적신들이 집권하자 / 賊臣執命
국시가 무너지니 / 國是北崩
평피의 회합은 / 平陂之會
또 하나의 사당(私黨)일레 / 又一淫朋
공은 맹종하지 않고 / 公不詭隨
정절이 돌보다 단단했으니 / 貞于介石
사람들은 공의 처신 살펴보고 / 視公進退
영예로운 때인지 아닌지를 예측하였네 / 占時榮辱
왕릉 이전 공사 감독하여 / 董匠遷陵
그 공로로 승지로 승진하고 / 勞陞銀臺
안변 부사로서 치적 드러났나니 / 著治安邊
검약하고 절제하였네 / 廉約自裁
대사간으로 들어온 다음 / 入長薇垣
예조 형조 참의 되고 / 參議禮刑
이조 참의 세 번 되어 / 三入選部
청탁(淸濁)을 꼼꼼히 따졌네 / 錙分渭涇
강화 유수로 발탁되고 / 擢守沁府
한성부의 우윤과 좌윤 거쳤네 / 左右尹京
예조 참판 재임하고 / 再佐秩宗
도승지가 한 번 되니 / 一爲知申
품계로는 가의대부 / 階則嘉義
춘추관과 경연 직함에다 / 春秋經筵
의금부와 오위도총부 관직 겸하고 / 金吾摠管
봉상시 제조 거쳐 / 提擧奉常
비변사 제조 힘껏 사양해도 / 力辭籌司
수석 영광 차지했네 / 首席據光
부인은 이씨이니 / 夫人李氏
본적이 함평이요 / 其籍咸平
부친 휘는 택상(宅相)이며 / 父曰宅相
고조 휘는 춘영(春英)이라 / 高祖春英
공이 세상 떠나시고 / 距公之沒
십구 년 뒤에 별세했네 / 十九年卒
여섯 남매 낳았는데 / 六子是擧
아들 넷에 따님이 둘 / 四男二女
흥원(興源)은 스무 살에 / 興源弱冠
진사과에 합격했고 / 迺成進士
창원(昌源)은 문과 장원이나 / 昌源魁科
벼슬은 정언에 그쳤네 / 正言而止
형원(亨源)까지 일찍 죽어 / 亨源蚤歿
모두 서른 못 넘겼네 / 俱未卅禩
명원(明源)은 부마 되어 / 明源尙主
금성위(錦城尉)에 봉해지니 / 封錦城尉
공이 영의정에 증직된 건 / 贈公議政
실로 그가 귀한 신분 된 덕일레 / 寔用其貴
큰사위는 김기조요 / 女金基祚
둘째 사위는 이도양인데 / 次李度陽
열렬한 이씨 아내는 / 烈烈李妻
남편 따라 자결했네 / 從夫自戕
장남에겐 아들 셋 있으니 / 長派三男
상덕(相德)은 이조 판서 / 相德吏判
상악(相岳)은 사간원 정언이며 / 相岳正言
상철(相喆)은 한성 부윤인데 / 相喆府尹
상악은 형원의 양자 되고 / 岳繼亨後
상철은 금성위의 양자 되고 / 喆爲尉子
족자인 상집(相集)도 / 族子相集
창원의 제사를 받들었네 / 亦承昌祀
공은 풍채 아름답고 / 公美姿度
천품이 곧고 깐깐하여 / 天姿抗簡
남의 부정 보게 되면 / 視人不正
그자의 갓이 기운 듯이 여겼네 / 若攲厥冠
집안에선 위의(威儀) 있고 / 在家獻獻
관에서는 강직하셨네 / 在官侃侃
소생이 묘갈명 지었으니 / 小子作銘
영원토록 마멸되지 않으리이다 / 永世不刊
[주D-001]여덟 망족(望族) : 박씨 중 밀양(密陽)ㆍ반남ㆍ고령(高靈)ㆍ함양(咸陽)ㆍ죽산(竹山)ㆍ순천(順天)ㆍ무안(務安)ㆍ충주(忠州)를 본관으로 하는 이른바 ‘팔박(八朴)’을 가리킨다.
[주D-002]평도공(平度公) : 박은(朴訔 : 1370~1422)의 시호이다. 태종 때 좌의정을 지냈다.
[주D-003]야천(冶川) : 박소(朴紹 : 1493~1534)의 호이다. 《연암집》 권1 ‘합천 화양동 병사기(陜川華陽洞丙舍記)’ 참조.
[주D-004]금계군(錦溪君) : 박동량(朴東亮 : 1569~1635)의 봉호이다.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扈從)한 공신이었다.
[주D-005]금양군(錦陽君) : 선조의 다섯째 딸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혼인한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 : 1592~1645)이다. 뒤에 금양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당대의 문장가로서, 《분서집(汾西集)》이 있다.
[주D-006]한림이며 …… 거치셨지 : 한림(翰林)은 예문관, 옥당(玉堂)은 홍문관, 춘방(春坊)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대각(臺閣)은 사헌부와 사간원을 가리킨다. 검상(檢詳)은 의정부의 정 5 품 벼슬로 문서 검열을 담당하였고, 전랑(銓郞)은 이조의 정랑과 좌랑을 가리킨다. 박사정(朴師正)의 관력(官歷)은 《연암집》 권9 ‘예조 참판 증 영의정 부군 묘표음기(禮曹參判贈領議政府君墓表陰記)’에 자세하다.
[주D-007]해읍(海邑)에도 …… 안렴(按廉)했네 : 흥양 현감(興陽縣監), 남해 현령(南海縣令) 등에 임명된 사실과 전라도 암행어사로 파견된 사실을 말한다.
[주D-008]처음에 …… 배치했네 : 영조 즉위 초에 《경종실록(景宗實錄)》을 편찬하는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할 때 당상관(堂上官)은 유봉휘(柳鳳輝)ㆍ조태억(趙泰億)ㆍ김일경(金一境)ㆍ이진유(李眞儒) 등, 낭청(郞廳)은 조지빈(趙趾彬)ㆍ신치운(申致雲) 등 소론 일색으로 임명되고, 낭청으로 임명된 박사정은 회인 현령(懷仁縣令)으로 축출되었던 사실을 말한다.
[주D-009]누가 …… 있네 : 박사정은 신치운 등이 박필몽(朴弼夢 : 1668~1728)에게 붙어 사관(史官) 자리를 차지한 것을 공박하였다. 박필몽은 소론 강경파로서 영조 즉위 초에 도승지가 되었는데, 실록청을 사사로이 출입한다고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주D-010]청묘(淸廟) : 종묘의 묘실(廟室)로, 여기에서는 숙종의 묘실을 가리킨다.
[주D-011]세 정승들 : 숙종의 묘에 배향된 소론측의 삼대신(三大臣)으로,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崔錫鼎), 우의정을 지낸 윤지완(尹趾完)을 가리킨다.
[주D-012]몸가짐 …… 조소하였네 : 영조 즉위 초에 노론과 소론을 가리지 않고 탕평책에 순응하는 사람들만 선발하는 데 항의하여, 박사정이 누차 관직에 제수되었어도 취임을 거부한 사실을 말한다.
[주D-013]네 충신 : 노론 사대신인 김창집(金昌集)ㆍ이이명(李頤命)ㆍ이건명(李健命)ㆍ조태채(趙泰采)를 가리킨다. 이들은 경종 때 왕세제(王世弟 : 후일의 영조)를 책봉하고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인 신임옥사(辛壬獄事)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이다. 1725년(영조 1) 사충서원(四忠書院)을 건립하여 이들을 제향하고 사액(賜額)하였다.
[주D-014]평피(平陂)의 회합 : 영조의 탕평책은 《서경》 홍범(洪範)에 “치우치지 말고 왕의 의로움을 따르라.〔無偏無陂 遵王之義〕”, “치우치지 않으면 왕도가 탕평하리라.〔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라는 구절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므로 ‘평피의 회합’은 노론과 소론이 뒤섞인 탕평파(蕩平派)를 풍자하여 한 말인 듯하다.
[주D-015]천품이 곧고 깐깐하여 : 원문의 ‘天姿’가 ‘天資’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는데, 뜻은 비슷하다.
[주D-016]그자의 …… 여겼네 : 《맹자》 공손추 상에서 백이(伯夷)는 “시골 사람과 함께 서 있을 때 그가 쓴 갓이 바르지 못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리기를 마치 제 몸이 더럽혀질 듯이 여겼다.〔與鄕人立 其冠不正 望望然去之 若將浼焉〕”고 하였다.
[주D-017]위의(威儀) 있고 : ‘獻獻’는 ‘의의’라 읽으며,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을 나타내는 ‘儀儀’와 같은 말이다.
[주D-002]평도공(平度公) : 박은(朴訔 : 1370~1422)의 시호이다. 태종 때 좌의정을 지냈다.
[주D-003]야천(冶川) : 박소(朴紹 : 1493~1534)의 호이다. 《연암집》 권1 ‘합천 화양동 병사기(陜川華陽洞丙舍記)’ 참조.
[주D-004]금계군(錦溪君) : 박동량(朴東亮 : 1569~1635)의 봉호이다.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扈從)한 공신이었다.
[주D-005]금양군(錦陽君) : 선조의 다섯째 딸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혼인한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 : 1592~1645)이다. 뒤에 금양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당대의 문장가로서, 《분서집(汾西集)》이 있다.
[주D-006]한림이며 …… 거치셨지 : 한림(翰林)은 예문관, 옥당(玉堂)은 홍문관, 춘방(春坊)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대각(臺閣)은 사헌부와 사간원을 가리킨다. 검상(檢詳)은 의정부의 정 5 품 벼슬로 문서 검열을 담당하였고, 전랑(銓郞)은 이조의 정랑과 좌랑을 가리킨다. 박사정(朴師正)의 관력(官歷)은 《연암집》 권9 ‘예조 참판 증 영의정 부군 묘표음기(禮曹參判贈領議政府君墓表陰記)’에 자세하다.
[주D-007]해읍(海邑)에도 …… 안렴(按廉)했네 : 흥양 현감(興陽縣監), 남해 현령(南海縣令) 등에 임명된 사실과 전라도 암행어사로 파견된 사실을 말한다.
[주D-008]처음에 …… 배치했네 : 영조 즉위 초에 《경종실록(景宗實錄)》을 편찬하는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할 때 당상관(堂上官)은 유봉휘(柳鳳輝)ㆍ조태억(趙泰億)ㆍ김일경(金一境)ㆍ이진유(李眞儒) 등, 낭청(郞廳)은 조지빈(趙趾彬)ㆍ신치운(申致雲) 등 소론 일색으로 임명되고, 낭청으로 임명된 박사정은 회인 현령(懷仁縣令)으로 축출되었던 사실을 말한다.
[주D-009]누가 …… 있네 : 박사정은 신치운 등이 박필몽(朴弼夢 : 1668~1728)에게 붙어 사관(史官) 자리를 차지한 것을 공박하였다. 박필몽은 소론 강경파로서 영조 즉위 초에 도승지가 되었는데, 실록청을 사사로이 출입한다고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주D-010]청묘(淸廟) : 종묘의 묘실(廟室)로, 여기에서는 숙종의 묘실을 가리킨다.
[주D-011]세 정승들 : 숙종의 묘에 배향된 소론측의 삼대신(三大臣)으로,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崔錫鼎), 우의정을 지낸 윤지완(尹趾完)을 가리킨다.
[주D-012]몸가짐 …… 조소하였네 : 영조 즉위 초에 노론과 소론을 가리지 않고 탕평책에 순응하는 사람들만 선발하는 데 항의하여, 박사정이 누차 관직에 제수되었어도 취임을 거부한 사실을 말한다.
[주D-013]네 충신 : 노론 사대신인 김창집(金昌集)ㆍ이이명(李頤命)ㆍ이건명(李健命)ㆍ조태채(趙泰采)를 가리킨다. 이들은 경종 때 왕세제(王世弟 : 후일의 영조)를 책봉하고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인 신임옥사(辛壬獄事)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이다. 1725년(영조 1) 사충서원(四忠書院)을 건립하여 이들을 제향하고 사액(賜額)하였다.
[주D-014]평피(平陂)의 회합 : 영조의 탕평책은 《서경》 홍범(洪範)에 “치우치지 말고 왕의 의로움을 따르라.〔無偏無陂 遵王之義〕”, “치우치지 않으면 왕도가 탕평하리라.〔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라는 구절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므로 ‘평피의 회합’은 노론과 소론이 뒤섞인 탕평파(蕩平派)를 풍자하여 한 말인 듯하다.
[주D-015]천품이 곧고 깐깐하여 : 원문의 ‘天姿’가 ‘天資’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는데, 뜻은 비슷하다.
[주D-016]그자의 …… 여겼네 : 《맹자》 공손추 상에서 백이(伯夷)는 “시골 사람과 함께 서 있을 때 그가 쓴 갓이 바르지 못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리기를 마치 제 몸이 더럽혀질 듯이 여겼다.〔與鄕人立 其冠不正 望望然去之 若將浼焉〕”고 하였다.
[주D-017]위의(威儀) 있고 : ‘獻獻’는 ‘의의’라 읽으며,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을 나타내는 ‘儀儀’와 같은 말이다.
'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암집 제4권/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총석정(叢石亭)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 (0) | 2017.10.25 |
---|---|
삼종형(三從兄) 수록대부(綏祿大夫) 금성위(錦城尉)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증시(贈諡) 충희공(忠僖公) 박명원(朴明源)묘지명(墓誌銘) (0) | 2017.10.25 |
유성환(兪成煥)에 대한 애사 (0) | 2017.10.25 |
이한주(李漢柱 )에 대한 애사(哀辭) (0) | 2017.10.25 |
오천(梧川) 처사 이장(李丈)에 대한 제문 (0) | 2017.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