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湛軒)이 소장한 청명상하도 발문
나는 이 그림에 발문을 지은 것이 이미 여러 번이었다. 모두 다 십주(十洲) 구영(仇英)의 그림이라 일컫고 있으니, 어느 것이 진품이고 어느 것이 위조품인가?
중국의 강남(江南) 사람들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정에 어두우니, 이 두루마리 그림이 동쪽으로 압록강을 건너온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글씨는 왜 꼭 종요(鍾繇),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顔眞卿), 유공권(柳公權)이라야 하며, 그림은 어찌 꼭 고개지(顧愷之), 육탐미(陸探微), 염입본(閻立本), 오도자(吳道子)라야 하며, 고정(古鼎)과 이기(彝器)는 어찌 꼭 오금(五金)으로 만든 선덕(宣德) 연간의 제품이라야만 하는가? 진품만 찾기 때문에 위조품이 수백 가지로 나오는 것이니, 비슷할수록 가짜가 많다.
융복사(隆福寺)나 옥하교(玉河橋)에 가면 손수 글씨나 그림을 그려 가지고 나와 파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아한지 속된지를 대충 가려서 사 두면 된다. 향로(香爐)로 말하면 건륭(乾隆) 연간의 제품이라도 모양이 고괴(古怪)하고 돈후(敦厚)한 것만 취한다면 북경 시장에서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湛軒所藏淸明上河圖跋
吾爲跋此圖。亦已多矣。皆稱仇英十洲孰爲眞蹟。孰爲贋本。吳兒狡獪。東俗眯眊。宜乎其此軸之多東渡鴨水也。書何必鍾王顔柳。畵何必顧陸閻吳。鼎彛何必宣德五金。求其眞蹟。故詐僞百出。愈似而愈假。隆福之寺。玉河之橋。有自賣其手筆書畵。當略辨雅俗。收而有之。爐則雖乾隆年製。卽取型範古恠敦厚者。庶不爲燕市之一笑。
[주D-001]오금(五金)으로 …… 제품 : 명(明) 나라 선종(宣宗) 선덕 연간에 강서(江西) 경덕진(景德鎭)의 관요(官窯)에서 만든 제품으로, 금ㆍ은ㆍ구리ㆍ철ㆍ납을 사용한다. 특히 선덕로(宣德爐)라 하여 선덕 연간에 만든 향로(香爐)를 일품으로 친다. 《宣德鼎彛譜 卷1》
[주D-002]융복사(隆福寺)나 옥하교(玉河橋) :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 권1 성북내외(城北內外)에 의하면 융복사는 명 나라 경종(景宗) 때 창건한 큰 절이었으나 현재는 없어지고 북경 동성구(東城區)에 융복사가(隆福寺街)라는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 옥하교는 어하교(御河橋)라고 하며, 정양문(正陽門) 안 한림원(翰林院)과 조선관(朝鮮館 : 옥하관〈玉河館〉) 부근에 있었다. 연암의 《열하일기》 앙엽기(盎葉記) 및 알성퇴술(謁聖退述)에 이 두 곳에 관한 언급이 있다.
[주D-002]융복사(隆福寺)나 옥하교(玉河橋) :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 권1 성북내외(城北內外)에 의하면 융복사는 명 나라 경종(景宗) 때 창건한 큰 절이었으나 현재는 없어지고 북경 동성구(東城區)에 융복사가(隆福寺街)라는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 옥하교는 어하교(御河橋)라고 하며, 정양문(正陽門) 안 한림원(翰林院)과 조선관(朝鮮館 : 옥하관〈玉河館〉) 부근에 있었다. 연암의 《열하일기》 앙엽기(盎葉記) 및 알성퇴술(謁聖退述)에 이 두 곳에 관한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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