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부(烈婦) 이씨(李氏) 정려음기(旌閭陰記)
박군 경유(朴君景兪)의 누이는 김씨의 처인데 지아비를 따라 죽으니 조정에서 일찍이 정려(旌閭)의 은전을 내렸다. 그 뒤 경유가 죽자 그의 아내 이씨가 의(義)에 따라 처신한 것이 경유의 누이에 비해 더욱 뛰어났다. 그래서 또 그 집에 정문(旌門)을 세우기를 김씨 처의 경우와 같이 하였다.
아! 이런 일은 세상에서 드물게 있는 바이거늘 마침내 박씨의 집안에는 저와 같이 용이하니, 또한 어찌 근본한 바가 없이 그러하겠는가? 박군은 나를 종유(從遊)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 그 사람됨이 온유하고 효우(孝友)하며 평소에 《소학(小學)》으로써 몸을 다스렸다. 다른 사람에 있어서는 혹 마지못해 한숨지으며 하는 일이라도 박군은 날마다 항상 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어린 누이와 젊은 아내가 귀에 젖고 눈에 익어 그 의열(義烈)을 보기를 마치 물 긷고 방아 찧는 일처럼 몸소 할 만하고 술과 음식을 의논하여 마련하는 것같이 여겼으며, 그다지 가혹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로 보지 않고 참으로 보통 남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한 번도 얻기 어려운 것을 그 집안에서는 15년 사이에 두 번이나 보게 된 것이다.
박군은 밀양인(密陽人)으로 자(字)는 치연(穉然)이며 자호(自號)는 담영(澹寧)이라 한다. 이씨는 학생 윤배(允培)의 따님인데 임인년(1782) 5월 18일에 죽으니, 그때 나이 36세였다. 죽은 그 이듬해 정월 21일에 나라에서 정문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주D-002]그 …… 뛰어났다 : 《연암집》 권10 이 열부 사장(李烈婦事狀)에 그 경위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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