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시대에나
더 많은 것을 탐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피를 갈취하는
타락한 권력자들이 있습니다.
요즘 한 드라마(구르미그린달빛) 때문에
"홍경래의 난"이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힘없는 백성들의 목소리
어쩔수 없었던 선택,
대표적인 조선의 민란
두 가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 동학농민운동 상상도
조선 농민봉기 왜 일어났는가?
농민 봉기의 근본적 원인은
조세의 부담이 극도로 심한 때입니다.
농민은 반란을 잘 일으키는 계층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라가 아주 혼란스러워서
무리한 조세로 인한 부담으로 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18세기 이후
세도정치하에 있으면서 온갖 폐단이 발생하고
또한 이앙선이 출몰하는 등의
불안한 전운과 함께.관리들의
사리사욕만 급급한 나머지 농민에게
엄청난 수탈을 가해 바로 민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1. 임술민란 (삼남민란)
조선 말 1862년(철종 13) 삼남지방에서 일어난 농민봉기사건.
1862년 2월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원인은 1. 양곡의 횡령 2. 취잉(환곡의 이자를 많이 받음)
3. 배호백징(호별로 강제징수하는 세금) 4. 공갈
5. 인징(불법으로 전세를 받는 것) 등이었습니다.
이에 전교리 이명윤( 주축이 되어 향리의 농민을
동원·훈련시켜 어느 정도의
조직적 민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3월에는 전라북도 익산에 민란이 일어나고
4월에는 개령·함평, 5월에는 회덕·공주·은진·연산
·청주·여산·부안·금구·장흥·순천·단성·함양·성주·상주·
거창·울산·군위·인동 등 삼남전역에 걸쳐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민란주모자는 극형에 처하고 탐관오리를
징계하는 한편, 삼정의 근본적인 개혁책을 강구하였습니다.
한편 박규수 등 안핵사는 민란의 원인이
국가재정의 낭비와 민생의 궁핍에 있음을 지적하고
삼남지방에서의 환곡제도의 폐지를 상소하였습니다.
조정은 5월 26일 삼정의 개혁을 위한 이정청을
설치하여 삼정이정절목을 공포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군정과 전정에 있어서는 민원이
없도록 개혁했으며, 환정에 대해서는
23개조의 수습방법을 들어 시정했습니다.
▲흥선 대원군
철종이 죽고 고종이 왕위에 올라 대원군이 집권,
서정을 쇄신하고 남인·북인 등을
등용하여 인재를 널리 구하게 되니
자연히 민란도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삼남민란은 결국 조선봉건사회의 한 붕괴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의 배경이 되는 사건입니다.
2. 홍경래의 난
이 민란은 당시 조선의 봉건적 사회상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홍경래의 난은 1811년 12월 18일부터
1812년 4월 19일까지 5개월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홍경래 난의 지도층에는 총지휘를 맡은 홍경래,
부원수로 불린 김사용, 광산을 경영하며
농민군 조직을 담당한 우군칙,
이념 지도를 담당한 김창시, 대상인으로서
물자 조달을 맡은 이희저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산군 다복동을 근거지로 삼아
광산 노동자 모집을 구실로 군사를
모아 훈련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힘을 잘 쓰는 역사들인 홍총각,
양시위, 김운용, 이제초 등도 가담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 완전히 무관 양성소 취급을 했던
서북 출신답게 홍경래, 김사용 등
지도부는 상당히 전투적 모습을 보였으며,
장상 출신들은 농민층과의 연결고리로서도
그리고 일선지휘관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10년에 걸쳐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이들은
1,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봉기하여
불과 열흘만에 청천강 이북의 가산, 박천,
정주, 태천, 곽산, 선천, 철산, 남창, 용천 등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12월 29일 안주성 공격을 앞두고
박천, 송림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진압군에 패하여 정주성으로 퇴각하였습니다.
이후 진압군이 초토화 전술로 밀어붙이면서
농민군은 연전연패하였고,
점점 상황이 어려워져 마침내
정주성이 함락당하고 말았습니다.
홍경래는 1812년 4월 19일 관군에
의해 정주성이 함락될 때 전사했습니다.
이후 동학 농민 운동이라는
유명한 사건들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는 민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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