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할아버지 연암박지원 및 환재공

박 열부(朴烈婦) 사장(事狀) 예조에 바치기 위해 찾아와 청하므로 대신 지어 준 것이다.朴烈婦事狀 爲呈春官來謁。

嘉石,何石 朴浚珉(贊九) 2017. 10. 31. 10:40

박 열부(朴烈婦) 사장(事狀) 예조에 바치기 위해 찾아와 청하므로 대신 지어 준 것이다.

 

남부(南部 한양의 오부(五部) 중 하나)에 사는 아무 직책을 맡은 아무개 등은 작고한 사인(士人) 김국보(金國輔)의 아내 밀양 박씨가 절사(節死)한 사실을 삼가 정장(呈狀)합니다. 저희들은 박씨의 이웃에 살고 있는데, 이달 열아흐렛날 밤 삼경에 이웃집 문지게를 누차 두들기며 급한 목숨 구하라는 소리가 있으므로, 위아래 여남은 집이 일제히 놀라 일어나 급히 그 까닭을 물었더니, 바로 박씨가 독약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그 집안이 허둥지둥 어찌할 줄을 모르고, 이웃에 이에 대한 경험방(經驗方)을 여기저기 물어보아 만의 하나나마 살릴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일제히 그 집에 모여 그가 마신 독약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바로 간수였습니다. 그래서 방약(方藥)을 이것저것 쓰게 하고 쌀뜨물을 여러 번 퍼먹여 보았으나 이미 어쩌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에 온 집안이 슬피 부르짖어 차마 듣지 못하도록 참혹했습니다.
대개 박씨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에 대한 효순(孝順)이 천성에서 우러나와, 의복과 음식의 범절에 있어 부모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으며, 몸 한 번 움직이고 발 한 번 옮기는 사이에도 반드시 어른의 뜻을 받들어 중문 밖을 내다보지 않고 바깥 뜰에는 노닐지 않으며, 단장(端莊)하고 근칙(謹飭)하여 매사에 여자의 법도를 따랐으니, 비록 이웃집의 계집종이나 물건 팔러 다니는 할멈도 그 얼굴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닐곱 살 때에 벌써 소문과 칭송이 무성하여 사방에서 딸 가진 자들은 누구나 박씨의 어린 딸을 칭찬하는 것으로써 자기 딸을 가르치고 타일렀습니다.
나이 열여섯 살이 되자 김씨에게 출가하였는데, 그 지아비가 불행히도 병에 걸렸고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약물 치료도 계속하기 어려웠으므로 비녀와 가락지 등속을 다 팔았으며, 병간호를 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천역(賤役)을 자청하였으며, 모진 추위 심한 더위에도 허리띠를 풀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잠 한숨 붙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점치고 기도하기를 극진히 아니한 적이 없어 매번 자신이 대신 죽게 해 달라고 칠성님께 빌었는데, 그 말을 마음속으로 하면서도 행여나 남이 알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급기야 지아비가 죽어 초혼(招魂)하게 되자 크게 한 번 부르고는 까무라쳤다가 겨우 깨어났으며, 그 이후로는 입을 다물고 한 숟갈 물도 마시지 않은 채, 죽어서 지하로 따라가기를 맹세하였습니다. 때때로 정신을 잃고 숨이 넘어가려 하여 친정 부모나 시부모들이 백방으로 달래고 타이르며 천 가지로 간곡히 권하자, 겨우 죽을 마음을 늦추고 억지로 부드러운 얼굴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친부모와 시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서 그렇게 한 것이지, 죽으려는 마음은 이미 굳어져 있었습니다. 그 형제들이 처음에 가끔 말을 걸어 의중을 떠보면,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목이 막혀 하는 말이,

“내가 김씨 집안에 들어와서 이미 한 점의 혈육도 둔 바 없으니 삼종(三從)의 도리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살아서 또한 무얼 하오리까? 한낮의 촛불같은 목숨이 아직도 끊어지지 않아 오래도록 부모님께 근심만 끼쳐 드리고 있으니, 이 역시 큰 불효입니다.”

하였습니다. 항상 조그마한 방에 따로 거처하여 발걸음이 뜰을 내려가지 않으니 사람 얼굴을 보기가 드물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집안사람들이 무언중 그 뜻을 살피고서 극력 방비하여, 비록 화장실 가는 사이에도 반드시 그 동정을 살폈으며 잠시 동안이라도 감히 방심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반년이 되어 방비가 조금 풀어지자, 이달 초열흘경에 턱밑에 갑자기 조그마한 부스럼이 생겨 그다지 아픈 지경까지 이르지도 않았는데, 박씨는 그 오라비에게 청하여 의원에게 물어 고약을 붙이곤 하므로 그 집에서는 더욱 방심했던 것입니다. 열아흐렛날 밤 화장실에 가는 길에 그 어머니가 따라가다가 앞과 뒤가 조금 떨어졌는데 갑자기 대청 위에서 넘어져 거꾸러지는 소리가 들리기에 놀라 쫓아 나와 보니 삽시간에 이미 구완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리라 생각하고 그 곁을 두루두루 살펴봐도 칼이나 비단 같은 도구들은 없고, 간수만 대청에 흥건하였습니다. 대개 그 집안에서 막 침장(沈醬)을 하려고 소금을 달아매어 짠맛을 빼고 있었으므로, 몰래 그 액체를 마시고서 기절하여 토했던 것입니다. 워낙 일이 경각에 일어났기 때문에 먼저 살피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일을 목격하고 서로 돌아보며 화들짝 놀라고는, 모두 말하기를,

“놀랍도다, 이렇게 정말 죽다니! 평소에 효순하다는 소문이 이미 저와 같이 자자했고, 오늘 절개를 지켜 죽은 결백한 모습이 또한 이와 같이 우뚝하니, 한 마을에 사는 정의로 보아 어찌 관청에 소지(所志)를 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니, 그 아버지가 울며 중지시키면서 하는 말이,

“내 딸이 저의 뜻을 이룰 수 있었으니 열녀라 이를 수는 있지만, 나에게 지극한 슬픔을 끼치고 죽었으니 효녀라고 이를 수는 없소. 지금 일을 크게 벌인다면 이 역시 죽은 자의 본뜻이 아닐 것이오.”

하였습니다. 저희들이 일제히 말하기를,

“이 일은 친청집과는 관계없는 일이오.”

하고서 물러 나와, 마을 안의 제일 어른의 집에 일제히 모였으며, 소지를 올려야 마땅하다는 데에 아무도 이의가 없었습니다. 이에 그동안 듣고 본 바를 주워 엮어 일제히 예조의 문밖에서 부르짖는 바입니다.
아아!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감동하여 분발하게 하는 방법은, 진실로 남다르고 정숙한 행실을 포상하고 정표(旌表)하는 은전을 베푸는 데에 있습니다. 영화(榮華)를 탐하거나 은혜를 바라서가 아니라 실은 풍속을 돈후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옛날에 남녀간에 권고하고 충고하는 말은 여항(閭巷)에서 부르는 풍요(風謠)의 가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성정(性情)에서 나와 풍속의 교화에 도움이 된다면 시를 채집하는 신하들이 이를 왕국에 바치고 악(樂)을 맡은 관원들이 음악으로 전파하여 사방을 교화하고 민심을 감발(感發)시켰는데, 지금 박씨의 아름다운 행실과 곧은 절개는 보통을 훨씬 넘었으며 담담하게 의(義)에 나아가고 결백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는 국가가 백성을 교화하고 좋은 풍속을 만들고자 하는 정책에 비추어 볼 때 실로 빛이 나는 일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빨리 임금님께 아뢰어 정려(旌閭)의 은전을 얻게 하여, 이로써 풍속의 교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고 정렬(貞烈)을 지킨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한다면, 저희들이 다행히도 열녀와 한마을에서 산 덕분으로 본받는 바 있을 것이며, 그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朴烈婦事狀 爲呈春官來謁。故代構。

 

南部居某職某等。謹呈爲故士人金國輔妻密陽朴氏節死事。卑職等居在朴氏比隣。今月十九日夜三更。有歷叩隣戶救急之聲。上下十數家一齊驚遑。急問其故。乃朴氏飮藥昏絶。其家倉卒遑遽。雜問經驗於隣里。以尋救活之道於萬分之一也。卑職等齊會其家。問其所飮之藥。則乃鹽液也。於是雜施方藥。多灌泔水。已無及矣。擧家號慟。慘不忍聞。葢朴氏自其幼時。孝順根性。衣服飮食之節。無違父母之命。動容周旋之際。必承長者之意。不窺中門。不遊外庭。端莊謹飭。動遵女儀。雖隣婢商媼。未嘗見面。六七歲聲譽藹蔚。四隣之有女者。莫不稱朴氏之幼女。以相敎戒也。及年十六。歸于金氏。而其夫不幸嬰疾。其家貧甚。藥餌難繼。則盡賣釵環。將護無人。則躳倩僕御。風寒暑熱。衣不解帶。晨夕朝晝。目不交睫。卜筮祈禳。靡不用極。輒禱北辰。願以身代。以口語心。猶恐人知。及其皐復。一呼而絶。僅得回蘇。因爲閉口。勺水不通。誓死下從。時時昏窒。其父母舅姑。百方寬喩。千般懇勸。則稍緩死心。强作和顔。葢其恐傷父母舅姑之心。而一死則已堅定矣。其兄弟試以言語嘗之。則輒流涕嗚咽曰。吾於金氏。旣無一塊之遺。三從絶矣。生亦何爲。晝燭未滅。久貽父母之慽。是亦不孝之大者。常別處一室。足不下庭。罕覿人面。以故其家默察其意。極力防護。雖便旋之際。必審動靜。造次之間。不敢放過。遲延半載。防守少弛。今月旬間。頷下忽生小腫。不至沈痛。而朴氏請於其兄。問醫傅藥。故其家尤爲放心。十九日夜。如廁之路。其母隨往。後先稍間。忽聞廳上顚撲仆倒之聲。驚怪出視。則霎時之閒。已難救矣。意謂自裁。環視其傍。則別無刀帛之具。而鹹水滿廳。葢其家方欲沈醬。懸鹽退鹹。故潛飮其液。氣絶而吐之。事在頃刻。莫之先覺也。卑職等目擊其事。相顧錯愕。咸曰異哉。是果死也。平日孝順之著聞。旣如彼藉藉。今日節死之明白。又如是卓卓。則其在同閈之誼。豈無呈官之擧乎。其父泣而止之曰。吾女得遂其志。則可謂烈矣。貽吾至慽。未可謂孝矣。今爲張大之擧。則亦非逝者之志。卑職等齊言曰。是無與於本家。於是退而齊會于洞中。耆老之家。合辭無異。拾掇見聞。齊籲於春官門外。嗚呼。若論觀感興起之方。亶在褒異旌淑之典。非爲冒榮而干恩。實是厚風而敦俗。古者男女告戒之詞。不過閭巷風謠之語。出於性情。有裨風敎。則採詩之臣。獻諸王國。典樂之官。播之絃歌。風動四方。感發民彛。今者朴氏懿行貞節。超出尋常。就義從容。處死明白。其於國家化民成俗之治。實有光焉。伏願亟達天聽。俾得旌閭之典。以補風化之萬一。以慰貞烈之幽魂。則卑職等幸同烈女之閭閈。得有所式與有榮焉。


 


 

[주D-001]급기야 …… 되자 : 원문은 ‘及其皐復’인데, 초혼(招魂)을 고복(皐復)이라 한다. 죽은 사람이 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손에 들고 지붕에 오르거나 마당에 서서 영혼이 돌아오라는 뜻으로 “아무개 복!〔某復〕”이라고 세 번 외치는데 이를 삼고(三皐)라 한다.
[주D-002]침장(沈醬) : 간장이나 된장을 만들려고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는 일을 말한다.